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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심하면 한 순간이다.
    <몹쓸 일기장>/마음이 흐른다 2016. 4. 8. 17:39

    정말 아무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방심했을 뿐인데...

    그 어느때보다 심각하게 다투고 심각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집을 나간 지 두 시간도 안되어 병원응급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게 되었다.

    참 모질다는 생각을 했다.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역시 아내다운 상황이었다.

    솔직히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모든 놀라운 일이 내게는 그렇게 펼쳐진다.

    그 순간은 그저 덤덤히 감당을 해야 했고,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을 겪었는지를 알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이제는 공공연하게 이혼을 얘기한다.

    카톡으로 다투고 힘들어하면서도 당장 급한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회의를 해야 하고 연락을 해야 하고 자료를 받아서 정리하고 넘겨야 한다.

    과장의 전혀 도움안되는 쓰잘데기 없는 일에 대한 얘기들을 듣고 대답해줘야 하고, 쓸데없는 거들먹거림과 시시껄렁한 너스레를 참고 있어야 한다.

    그냥 아무도 내게 더 말을 걸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까지 만들어야 할 엑셀파일을 연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질려서 보내는 카톡 메시지를 꼬박꼬박 읽는다. 비난과 절규와 헤어짐... 칼날처럼 찌른다.

    나는 생각한다. 말이라는 것이 사실은 필요가 없구나.

    지나고 나면 이때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사실 나는 이 상황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에 대해 철저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어떤 사람도 지난 한 때 

    이와 비슷한 마음과 상황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어제 만난 지 1주년을 계기로 케익을 사고 화해를 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내는 '기념일이 뭐가 중요해.'라고 얘기하고는 힘없이 케익 한조각을 떠먹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당연했다.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는 것은.

    지난 주부터 새벽기도를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기도하지 않아서인가.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내가 힘든 것은 이런 것이다. 방심하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협감과 불안감.

    그러지 않기 위해 용을 써야 하는 상황.

    아내가 말한 것도 이런 것이었다. 결혼을 했지만 부부같은 안정감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헤어지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둘다 원하지 않는 이런 불안감을 계속 갖고 가야 하는 것일까.

    궁금한 것은 그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고 정상적이고 평온하고 일상적인 삶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끝없이 갈구하거나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인가.

    그냥 그렇게 보여질 뿐이고 누구나 힘들게 버텨가며 살아가는 것인가.

    나는 그저 잘 지내기만을 바란다. 이미 헤어지고 싶다는 아내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한 지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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